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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당/서평

[서평] 집을 통해 본 프리랜서 작가의 성장기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by 나답게글쓰기 2022. 8. 23.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라이프앤페이지, 2020)를 쓴 작가 하재영은 대구 중구와 수성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스물한 살에 서울로 상경하면서 관악구와 성동구에 살게 된다.  작가는 스물여덟 살에 등단할 때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삼십 대에는 홀로 독립해 “오로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p.128) 작가는 고양시 덕양구에서 글을 썼다. 2015년 고양시 일산동구에 신혼집을 마련하면서 “원고료가 입금되지 않는 글을 쓰지 않았”(p.128)던 저자가 집 리모델링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2018년 서울 종로구로 이사하면서 호텔 사업을 했던 아버지가 직접 리모델링을 돕는다. 작가와 아버지가 함께 리모델링을 하면서 서로에 대해 좀 더 알게 된다. 구기동 집에서는 남편은 주방 옆방을 자신의 방으로 사용하고 저자는 거실을 공동 공간이 아닌 작업실로 사용한다. 작가의 기억은 “집이라는 물질적 환경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하재영 작가의 지나온 시절에 대한 산문이다. 프리랜서인 저자에게 집은 주거의 공간이자 사무 공간이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낼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때 가족들-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여동생들, 결혼하지 않은 세 삼촌들-과 함께 살던 대구 적산가옥은 가부장제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두 번째로 이사한 “대구의 강남” 수성구의 명문 빌라에서는 집이 단순히 주거지가 아니라 “계급과 자본의 속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저자는 깨닫게 된다. 

 

단지와 단지로 이루어진 아파트와 고급 빌라는 비슷한 계급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신분제 공간이었다. (p.44)

 

작가가 대학을 졸업해 처음으로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인 “난초가 피는 골짜기여서 난곡, 굴러떨어진 해골이어서 낙골”(p.56)에 터를 잡게 된다. 서울 관악구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 곳이었고 그 이유는 “방범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곳”(p.)이었기 때문이라고 범인은 자백한다. 작가는 관악구에 살면서 불안을 느꼈다. 작가는 평등하지 않는 주거환경과 여성의 안전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계층도, 세대도, 삶의 궤적도 다른 다양한 여성들을 지배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불안’일 것이다.(p.62)

 

등단한 뒤 열 편의 단편 소설과 한 편의 중편 소설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가난했던 작가는 함께 살던 동생과 독립하면서 비로소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다. 가족들이 자신의 몫까지 아등바등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일산에서 홀로서기를 하면서부터 작가는 “내가 지낼 공간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시간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순간이었다.(p.104)”고 회고한다. 

 

작가는 개인의 경험을 집과 연관해서 빈부, 계급, 가부장제에서 여성의 위치, 안전 문제 등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하지만 책에 주거권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이 아쉽다. 집은 인권이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주거를 갖춰야 한다. 저자는 재개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을 보며 “모두 가깝거나 먼 미래의 나인 것 같았다”(p.71)라고 개인적인 불안에서 문제의식이 그친다. 주거기본법에 따르면 국민은 물리적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서 안전하고 인간다운 주거 환경에 대한 고민이 부재하다.  

 

또한 작가는 자기만의 공간을 강조한다. “공간을 소유하는 것을 자리를 점유하는 일”(p.130)이라는 자신의 가치관을 밝힌다. “자기만의 방”을 피력한 것은 작업 공간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생계 공간인 자신의 집과 자리를 점유하는 것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다. 버지니아 울프가 강조한 ‘자기만의 방’은 단지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진 않았다. “자기만의 방”은 여성들이 홀로 틀어박혀 있는 고립된 공간이 아닌 글쓰기를 하며 협업과 연대를 강조했다. 울프에게 독서와 글쓰기는 개방적이고 생성적인 연대를 가능하게 만드는 수단이었다. 하재영 작가도 물리적인 자기만의 공간에만 천착하지 않고 가부장제의 가사 노동자의 노동권에 대한 여성들의 연대 등에 대한 고민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작가는 단순히 집값만을 기준으로 집을 선택하지 않고 “매일 보게 될 풍경을 선택하는 일”(p.193)을 제시한 것은 반갑다. “어디 살아?”라는 질문이 거주 지역이 아닌 삶의 방식과 집의 형태를 묻는 질문이 되길 바란다. 프리랜서 작가의 일상이 궁금하거나 집다운 집과 안온한 삶에 대한 동경이 있는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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