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파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사건을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기자가 정리해 주니 내 나름의 판단 기준이 생겼다. 기자의 의견에 대해서는 100프로 공감할 수는 없지만 사건의 내용, 주변 사람들의 반응 등을 알 수 있는 책이었다.
사건 일지
2020년 7월 7일(화)
14:02 김재련 변호사가 유현정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박 시장의 이름을 대고 면담 요청
14:37 김재련은 이미경 성폭력상담소장에게 "박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알리고 여성단체 지원 요청
2020년 7월 8일(수)
10:31 김영순 여성운동단체연합 상임대표가 같은 단체 출신 민주당 남인순 의원에게 전화
10:33 남인순은 자신의 보좌관을 지낸 임순영 젠더특보에게 "박시장 관련 불미스러운 이야기가 도는 것 같다"고 알려줌.
14:28 김재련은 서울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 담당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시의 높은 분이 관련된 중요한 사건이 있으니 서울청에서 조사해달라'고 전화
15:00 임순영이 박 시장 집무실로 찾아감.
16:30 김재련과 피해자가 서울청 민원실에 도착해 고소장 제출
17:00 피해자 조사가 시작돼 다음 날 새벽 2시 30분까지 이어짐
19:00 서울청이 경찰청에 박원순 고소 사건 보고
2020년 7월 9일(목)
9:15 고한석 비서실장이 박 시장과 면담. "잔디가 여성단체와 함께 나를 고발하려는 것 같다. 빠르면 오늘이나 내일쯤 언론에 공개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시장직을 던지고 대처할 예정"
10:40 서울시 대변인실이 출입기자들에게 4시 40분으로 예정된 시장과 대통령직속국가균형발전위원장의 면담이 취소됐다고 문자 메시지 발송
10:44 박 시장이 등산복 차림으로 공관 나섬.
11:00 고한석 비서실장 주재로 시장 거취 관련 대책회의
13:24 박 시장이 임순영에게 "아무래도 이 파고는 내가 넘기 힘들 것 같다"는 메시지 남김.
13:39 박 시장이 고한석과 마지막 통화에서 "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기 버겁다"고 말함
14:42 박 시장이 와룡공원 부근에서 신원미상의 지인과 마지막 통화 함. 가족들을 잘 보살펴달라는 부탁.
16:00 박 시장 참모들이 언론 취재를 피해 플라자호텔에 '임시상황실' 마련. 고한석은 시장실 늘공들을 조기 퇴근시키고 어공들과 박원순계 의원들에게 플라자호텔로 오라고 알림.
17:00 박시장 부인이 고한석에게 '공관 책상에서 유서를 발견했다'고 알림
17:17 박원순 딸 다인 씨가 119에 전화
2020년 7월 10일(금)
0:01 박 시장 시신이 북악산 숙정문 부근에서 발견
책에서는 사건 혐의를 크게 박시장의 행위, 그리고 박시장 외의 다른 사람들의 행위로 나눴다.
박시장의 행위로 지목된 것은 : 셀카 밀착, 무릎 호, 내실에서 안아달라, 텔레그램 음란 문자와 사진 전송, 전보 불승인, 혈압체크 강요 및 성희롱 발언
박원순 사람들의 행위로 지목된 것은: 마라톤 강요, 샤워 시 속옷 심부름, 낮잠 깨우기, 결재 시 심기 보좌와 성희롱 발언, 기자회견 만류(김주명 전 비서실장), 시장실 직원들의 추행 방조, 증거 인멸
피해자 잔디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4월 사건'이 피해자가 박 시장을 고소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2020년 4월 14일 잔디가 시장실 직원 3명과 술자리를 겸한 만찬 모임을 했다. 잔디가 술에 취하자 Z(가해자)가 잔디를 택시로 이동했다. 둘은 밤 11시를 넘은 시각 서초구 한 모델에 들어갔다. 4월 15일 피해자는 서초경찰서에 Z를 신고했다. 17일 오후 Z는 시장실의 직속 상관에게 사건을 털어놓았다. 22일 피해자는 인사기획비서관과 통화하고 가해자에 대한 징계 조치를 요구했지만 '두 사람과의 인연이 모두 소중해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답을 들었다.
늘공과 어공도 처음 들었다. 늘공은 늘 공무원으로 정통관료이며 어공은 어쩌다 공모원으로 당선인 참모들이다. 그렇다 보니 어공들이 박 시장에 대한 충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피해자는 늘공이었다. 2015년 2월 9급 공무원에 임용되었고 그 해 6월 시장실 면접을 봤다. 2017년 8급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2019년 7월 발령을 받아 시장실을 나갔다. 늘공 중에서는 가장 오래 시장실에 있지 않았나 싶다.
근무 기간 동안 잔디와 박시장은 매우 친했던 것 같다. 잔디가 박 시장을 존경했을 것이다. 하지만 4월 사건 이후, Z에 대한 비서실의 대응을 보며 상처를 받지 않았나 싶다. 박시장이 잔디와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위로를 했다면 박시장을 고소하는 일은 없었을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지금까지 국가기관에 의해 내려진 결론을 요약하고 있다.
1. 박 시장의 참모들이 조직적으로 피해 사실을 은폐하고 피해자의 호소를 외면했다는 고소에 대한 경찰의 무혐의 처분
2. 피해자의 주장 중 일부를 받아들여 박 시장에 의한 성츼롱을 인정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
3. 별건 재판에서 박 시장의 성추행을 인정한 사법부의 판결문
이 사건은 권력형 성추행이라고 생각한다. 구조적인 문제이고 우리 사회의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이 큰 몫을 한다. 안희정 사건은 2018년 3월, 오거돈 사건은 2020년 4월에 일어났다. 만약 박시장이 죽지 않고 끝까지 남았다면 어땠을까? 우리 사회의 직장 내 성추행 문제에 대해 한 걸음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